제목"소하르의 소나타" 책 서문2018-11-06 14:42
작성자 Level 10

“고통에 대한 책을 저술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저는 익명으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정말 고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바를 밝히려면 꽤나 꿋꿋한 인간인것처럼 보이도록 말할 수밖에 없는데 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코웃음을 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부탁은 거절되었고 그 대신 제 자신이 머리말을 통하여 나 또한 그렇게 원칙대로 살지 못하고 있음을 밝히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C.S. 루이스가 그의 저서 <고통의 문제>에서 언급한 말입니다. 고난이란 주제로 다시 얼굴을 드러내려는 저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갖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약함을 덮어 주는 주님의 옷자락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출판사를 통해 인사말을 달라는 재촉을 계속해서 받으면서도 선뜻 뛰어들지 못한 것은 아무런 사명감도, 세상에 대한 책임의식도 없이 다만 ‘다만 분수를 넘은 욕심이 아닐까’하는 마음 탓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다”라는 세상을 등진 어느 시인의 인간에 향한 비수 같은 말이 가슴에 묻혀 있기에 그렇습니다. 고민스럽던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고단한 이민 봇짐을 지고 스쳐가는 한 가족을 만났습니다. 괜스레 슬픈 얼굴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쓸쓸하게 보이는 낮선 이의 등을 보면서 축복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분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게 말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그런 작은 바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다시 돌아온다면…….특히 고난 속에서 아픔과 낙심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절벽에서 밧줄이, 불편한 이에게 지팡이가, 그리고 어두움 속에서 빛이 필요하듯, 힘겨운 시간을 살아내는 이들에게는 바로 희망이 필요합니다. 이 책이 아주 작은 그 믿음으로, 빛으로 지팡이로, 그리고 생명의 밧줄로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그런 바람 속에서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주일 강단에서 거의 매년 고난을 주제로 말씀을 증거하는 까닭은 루이스의 지적처럼 저 자신이 당당하고 꿋꿋하게 고난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아무런 아픔도 없이 훈계나 하려 들거나. 혹은 고난이라는 적을 과소평가하려 드는 어리석은 자만심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난의 문제와 질문에 대해 단번에 해답을 내리려는 위험한 발상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마음의 상처로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과 가슴으로 눈물 흘리는 이들을 보고 있기에, 그들이 그 슬픔 때문에 그들에게 내민 하나님의 손길을 거절하지 않도록, 또한 마주하고 있는 낙심의 무게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지 않게 붙잡아 두고 싶은 목회자의 마음 탓입니다. 문장 속에 이어지는 긴 호흡과 거친 숨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글로 만나는 이들에게는 사람의 육체 속에 불어 넣어주신 하나님의 숨결로 들리기를 기원합니다.

 

견딜 수 없이 무거운 절망에서 또 다른 절망으로 운명을 방치한 채 무의미하게 견디어 가는 이들에게 이제는 희망을 세워 맞서 싸워 보라고 마치 현실을 배반한 사람들의 말처럼 깃발을 들고 흔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의 은혜 아래서 주님을 바라보자고 하는 기도가 담겨 있기를 바랍니다. 저녁마다 헐겁고 차가운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고난을 고난으로 긍정하라고 하는 이의 허허로운 외침도 아닙니다. 쓸쓸하게 속으로 울고 있는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바로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들리는 축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목회자에게 설교란 언제나 무거운 멍에 같은 것이지만, 로이드 존스의 지적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일에 부름을 받은 것은 최고의 축복이며 사명이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자리이지만 무한한 책임이 따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강단에 설 때마다 기쁨과 동시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설교자가 서 있는 강단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터’라고 말한 마틴 루터의 신념은 힘과 함께 채찍이 되어 주었습니다. 강단에 설 때마다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한사람이라도 오늘 이 자리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지난 20여 년 동안 함께 했던 그분들을 그리면서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전히 감사를 드리고 싶은 고마운 분들이 마음속에 사랑의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설교를 기쁨으로 원고에 옮겨 주신 분들과 그 원고를 온 마음으로 교정해 주신 분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리며, 또한 주의 전에서 말씀을 사모하여 은혜 담은 가슴으로 마주한 이들과 사랑 가득한 따뜻한 손으로 잡아 준 중앙 동산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책을 늘 교회와 저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기도하는 아내 전귀현에게 감사함으로 바칩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 오직 주님의 은혜, 오직 주님만 사랑하기를 원하면서.

 

2009년 11월15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불충한 종 이재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