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안식년을 떠나면서2018-04-14 09:21
작성자 Level 10
“안식년을 떠나면서”

막혀진 울타리 안의 갑갑함의 무게 때문에 어느 날 모든 것을 충동적으로 내려놓고 훌쩍 떠나는,
반복되는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려고 일탈을 꿈꾸며 반역을 하는 이들의 광대 같은 떠남도 아닙니다.
지친 심신을 회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밀려서 떠나온 쉼을 위한 떠남도,
그리고 새로움을 추구하고 탁월을 지향하는 이들이 낯선 시간과 공간을 향하는 설레임과 도전의 발걸음도 아닙니다. 더구나 책임과 열심을 핑계 삼아 내 것 인양 움켜잡고 있던 욕심과 아집을 깨트리고 싶어 떠나 는 것도 아니며 바닥이 들어나 추한 소리만 드러내는 모습에서 재충전과 자기 돌아봄의 성찰을 위한 시간 도 아닙니다.
솔직히 그냥 떠나고 싶어서입니다. 어쩌면 위의 모든 것이 사실일 수도 있는 잠시이지만 떠나감입니다.
이제 잘못 내린 기차역에서 봇짐 하나들고, 기다리는 이 반겨 주는 이도 하나 없어도 가고 싶은 곳도, 가기로 예정 되었던 곳도 막으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신 대로 따라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대한 기대감도 한편 두려움도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그저 멍하게 쳐다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바다의 얼음 꽃도
온 종일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때묻지 않은 산속에서 새와 나무들과 속깊은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비행기 창문 틈으로 처음 비행기에서 보았던 구름세계가 보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저려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직장, 사업, 가게일로 지금까지 휴가 한번 마음 놓고 떠나지 못한 이들,
내 손이 안가면 안되는 자식들 눈에 밟혀서 하루도 편히 쉼을 가져 본적이 없는 이들,
이민 생활, 허허로운 외로움과 송곳같은 아픔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입니다. 아직도 직장문제로 가족에게조차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떨군채 무슨 죄인인 것처럼 버티어가는 분들, 여전히 경기 침체로 가게 문을 닫고 혹은 비즈니스 걱정으로,
어떤 분은 자식의 아픔을 보면서 가슴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는 분들, 어떻게 해야 할지 신분의 문제로 불 안해하는 분들... 그들의 눈물을 만져주지도, 어깨를 안아 드리지도, 곁에서 힘이 되지도 못한 채 떠나온 이기적 모습이 마음에 자꾸만 걸립니다. 어쩌면 그런 문제들을 피하여 도망친 비겁한 모습에 자꾸만 목이 메입니다. 상록회 어르신분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런 못난 목사를 제 목사로 여겨 허물을 덮어주시고 존중히 여겨 주시는 분들,
투박하고 거친 긴 호흡의 설교를 참아주시고 오히려 은혜를 받은 자의 모습으로 저를 격려하시는 분들,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헌신하는 분들에게 손 내밀어 고맙다고 인사한번 드리지 못했지만,
온 마음 다해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며 섬기는 분들에게 다가서서 가슴 한번 품어 주지도, 등을 두들겨 본 적도 없지만, 턱없이 모자라는 저를 한결같이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따뜻한 마음과 눈길로 지켜주시는 분들 에게 눈물겹도록 감사한 마음입니다. 떠나는 날 눈물로 손을 잡아주시던 분들에게도 말입니다.

1차 안식년(1995년)은 시카코의 신학교에서 신학공부를, 2차 안식년(2005년)은 유럽의 수도원에서 영성 훈 련을, 그리고 이제 3차 안식년(2018년)을 시작합니다. 무엇을 배우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목표도 없습니다. 우리교회를 주님의 손에 맡기고 떠나갑니다.
물론 이렇게 떠날 수 있는 것은 훌륭한 장로님들, 우리 교회를 목사보다 더 사랑하는 그분들이 계시기 때 문입니다. 장로님들의 희생은 우리교회 축복이며 자랑입니다. 또한 귀한 사역자들이 우리교회 각 부서에서 충성스럽게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교회의 보배요 자산입니다.

휴스턴 중앙 장로교회 성도님 여러분,
특히 상록회 어르신분들 건강 하시고, 늘 감동이 되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 사랑합니 다. 그리고 축복합니다. 지금 눈앞에 기쁨과 아픔으로 그려지는 모든 분들 다시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 다.
2018년 안식년을 시작하면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재호 목사가 인사드립니다.

2018년 4월 11일 담임목사 이재호